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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고] 우리 모두, 조금씩 다른 꿈을 함께 꾸자_ 석진 번호 19
이름 인권운동사랑방 등록일 2009년 02월 12일 13시 28분 조회수 463  /  56
분류 일반
에이즈감염인인권단체 카노스에서 소식지에 싣는다고 반차별공동행동 활동가로서 원고를 부탁했어요. 그래서 한번 써봤는데...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기도 하고...부끄럽지만...공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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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조금씩 다른 꿈을 함께 꾸자
반차별공동행동과 카노스가 만나길 바라는 이유



시신이 잠들어 있는 관 주변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장례 행렬은 어느새 시위 행렬이 되었다. 혹시나 시신이 관에서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 백악관에는 흰 가루가 뿌려졌다. 에이즈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육신을 대신하는 고귀한 한 줌의 재. 슬프고도 ‘과격한’ 상황이지만 에이즈를 둘러싼 사회적 차별에 맞서 저항하는 활동가들의 활동은 너무나도 당당했고, 눈부셨다.

영화 <반격하라! 에이즈에 맞서라!>를 보게 된 건 지난 2월에 있었던 반차별영화제(“다함께 차차차 : 차별, 그리고 차마 말하지 못한 차이”)를 통해서였다. ‘액트업(ACT UP)’이라는 미국 에이즈 인권단체의 활동을 거짓 없이 담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놀라운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에이즈는 당뇨와 같은 질병의 하나일 뿐이지만,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면서 ‘더럽고 무서운 병’으로 탈바꿈되었다. 에이즈를 ‘무서운 병’으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라며 에이즈 감염인들을 비롯한 활동가들은 이러한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활동들을 벌여냈다. 국제회의에서 당당하게 항의 의사를 전달하고 미국 뉴욕의 중심가에서 비타협적인 시위를 전개하는 등 영화 속의 장면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극영화보다 오히려 더 극적이었다.

현실은 종종 영화보다 극적이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자율적으로 촛불을 든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시민들은 이제 정부와 권력에 의해 훈육된 거짓 민주주의의 틀을 넘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사회로 전달하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익혀나가고 있다. 주권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불의한 권력을 비판하고,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경찰에 대한 항의도 거침없다. 촛불집회는 권력자가 규정해놓은 합법/불법의 경계를 조롱하며 가볍게 넘나들고 있고, 평화집회/폭력집회의 이분법도 무력화시키고 있다. 광장에서의 집회는 자연스럽게 거리로 흘러들고 있고 거리 위의 정치는 생물체처럼 스스로 흐르고 진화하며 자연스럽게 ‘밤의 해방구’를 ‘열어제끼고’ 있다.

지금은 비록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고 부도덕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수만 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지만, 머지않아 이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며 촛불을 들게 된다면 어떨까?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여성,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비혼, 장애인 등 모든 사회적 차별에 반대하는 촛불이 서울시청 앞 광장과 시내를 가득 채우게 된다면 어떨까?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결국은 다른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반차별공동행동의 중요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결합해 ‘부도덕하다’는 편견이 강화되었고, 질병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병력에 따른 차별과 결합해 ‘더럽고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이 만들어졌다.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안정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불안정 노동으로 인한 차별에 노출된다. 또 에이즈에 대한 편견은 이주노동자와 성매매 여성에 대한 차별과 결합하면서 더욱 깊은 편견의 골을 만들어낸다. 어떠한 차별이든 차별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별과 결합되면서 강화되고 여러 교차적인 차별에 노출되는 피해자 집단을 만들어낸다. 또 어떠한 사람이든 하나의 정체성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정체성만큼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차별들은 반차별공동행동을 통해 서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당한 차별과 당신이 당한 차별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함께 해야 진정으로 차별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더 잘 알게 될 때 비로소 ‘차별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반차별공동행동 활동을 하면서 그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있다.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어떻게 여성에 대한 차별과 만날 수 있고 또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만날 수 있는지 지난 몇 달 간의 반차별공동행동 활동을 통해 우리 모두는 배워나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고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의 차별이 연결되어 있음을 서로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필요하기도 하고, 나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 당신의 차별을 없애는 것과 다르기도 하지만 또 만날 수 있기도 하다는 점에서 고맙기도 하다. 반차별공동행동에서 그렇게 카노스를 만났다.

기존의 주류 권력이 자신들이 만든 ‘정상’의 기준으로 차이를 만들어내고, ‘단지 다를 뿐인’ 차이가 위계화되면서 차별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차별 속에서도 위계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반차별공동행동 속에서도 그런 위계가, 지금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위계는 저들이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이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 차별없는 세상을 꿈꾼다면 함께 그 위계를 넘고 차별을 만들어내는 ‘정상’에 도전할 때 우리가 꾸는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우리 모두, 조금씩 다른 꿈을 함께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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