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반차별팀 3차 세미나
- 「여성들 사이의 차이」 발제
- 『왜 여성사인가』, 거다 러너, 푸른역사



역사와 현실을 보는 또다른 시선

여성사는 역사학에 새로운 주제를 도입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학을 비롯한 모든 지적 체계의 근간이 되는 개념과 가치들을 검토하게 만들었다. 이런 여성사는 특정 내용이 왜 이전에 생략되거나 무시되고 하찮게 취급되었는지 묻게 했음을 물론, 무언가를 포함하는 일을 누가 결정하는지에 대해서도 따져보게 만들었다.

가부장적 사고의 근본적인 오류 가운데 하나는 상층계급 백인 남성들로 구성된 소수 엘리트 집단의 활동을 묘사한 것을 두고 보편성을 갖는다고 주장한 점이었다.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여성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단일한 범주로 취급될 수 없다는 점을 오래전에 알았다. 여성들은 계급, 인종, 민족적·지역적 제휴, 종교 등의 여러 범주들에 의해 서로 구분된다.
과거 혹은 현재의 어떤 집단에 포함된 여성들을 연구하고 그들에 대해 일반화를 단행할 때, 여성들 간의 유사점뿐만 아니라 차이점도 언제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통의 핵’ - 나는 공통의 핵과 더불어 다양한 변형을 보이는 구체적인 내용을 함께 가르쳐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현실과 진실을 왜곡하게 된다고 본다.
‘샐러드 그릇’ - 이 개념은 확실히 진보한 것이긴 하나, 권력과 지배, 헤게모니를 무시하기 때문에 실제 모형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다양성’ 담론의 함정)

지배를 정당화하는 ‘차이’의 정치

남성들이 ‘차이’를 지배로 전환하는 방법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서열과 불평등, 착취의 모든 체제들을 구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마련했다. 남성들은 이런 체제들을 정당화하고 피지배자의 협력을 구해 그것을 계속 작동하게 하는 길을 발견했다. ‘차이’가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발견.

소수의 남성들이 자원을 지배하고, 그것을 성적 재산으로 획득한 여성들에게, 아이들과 여타 힘없는 남성들에게, 새롭게 창조된 최하층 노예들에게 배분한다. 이렇게 창조된 권력관계의 결은 각각의 집단에 특권과 의무를 균형있게 배분하여 전체 구도를 수용하게 만들고, 그 구도를 지배 남성 집단을 위해 지속시킨다. 광포한 군국주의와 끊임없는 전쟁의 시대에, 그리고 유아와 산모의 사망률이 높은 시대에, 부족 전체가 생존하려면 여성과 아이들은 보호받아야만 했다. 이런 추론은 여성들에게 처음부터 ‘가부장적 거래’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협력하게 만들었다.
노예제는 남성들이 포로를 죽이지 않고 살려둘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원을 처음으로 획득한 시기에 발전했는데, 그 역시 처음에는 여성의 경우와 유사한 거래로 출발한다. 노예 여성들은(이후에는 남성들도) 군사적 정복에 따르는 노예화의 대가로 생명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거래를 수락하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 최초의 노예로 알려진 이들이 외래 부족의 여성들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 부족들은 인종으로나 외관으로나 정복자들과 다른 경우가 많은데, 정복자들은 이를 빌미로 그들을 영구히 최하층 계급으로 쉽게 지정할 수 있었다.
언제나 강조되는 것은 ‘차이’다. 노예는 주인과 다르며, 다르기 때문에 열등한 존재로 지정될 수 있었다.

‘타자화’를 통한 지배의 정당화

역사에서 볼 때, 지배를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은 ‘차이’에 부정적인 표식을 붙이는 것이다. 이 집단 혹은 저 집단은 우리와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타자’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타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통치할 수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기초로 삼은 계급 지배는 그 지배를 통해 직접적인 이득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고대국가의 형성 시기에 노예를 소유하지 않은 남성들은 집단 내에서 더 강력한 남성들이 자원을 지배하고 이용하려고 하면 그 거래에 응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편으로 ‘다른’ 타인들, 요컨대 같은 계급의 여성과 아이들의 자원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최하층 계급의 존재는 노예를 보유하지 않은 남성들의 신분의식마저도 고취시켜주었으니, 그들은 상대적 불평등을 공정한 협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발견된 차이’의 고정관념화

일단 지배와 서열 체계가 관습과 법률, 관례 속에서 제도화되면, 역사적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그 체계를 자연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보이고, 사람들은 더는 그 체제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피지배자의 경우, 일단 노예제가 세습화되면 최초의 거래에서 얻은 이득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것은 그저 전제 권력에 기반을 둔 착취 행위일 뿐이다.

성적·계급적·인종적 차이의 복합성/통합성

성적·계급적·인종적 지배가 처음부터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어 분리될 수 없다.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는 가장 쉽게 눈에 띄는 최초의 차이였다. 따라서 그와 같은 여러 지배 양식 중에서 남성 지배가 가장 먼저 실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득을 불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준 이 인간 최초의 ‘발견’은 즉시 (정복당한 외국인들을 노예로 만드는 형태를 취한) 계급 지배와 인종 지배로 발전했다.
어떤 억압 체제가 먼저이고 어떤 것이 나중이냐는 문제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남성과 여성은 양자 간의 명확한 구별 없이 동일한 계급에 속한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계급’은 결코 위치와 관계, 경험의 단일한 집합을 묘사하지 않는다. ‘계급’은 성차별적이어서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언제나 다른 용어로 표현되고 제도화된다. 남성들의 경우, ‘계급’은 생산수단과 맺는 관계와, 자원이나 여성과 자녀들에게 행사하는 권력을 묘사한다. 여성들의 경우, ‘계급’은 생산수단과 맺는 관계를 묘사하나, 그 수단은 그들이 성적·재생산적 봉사를 바치는 남성 그리고/혹은 출생 가정에서 의존하는 남성을 통해 중재된 것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들의 경우, ‘계급’은 생산수단과 맺는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식 능력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있는 (그래서 그것을 갖추지 못한 듯 보이는) 상태를 묘사한다.
마찬가지로 ‘인종’이라는 개념도 확장되고 재규정되어야만 한다. ‘인종’은 애초부터 성차별적인 용어로 창조되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방식으로 적용된 것이다. 피억압 인종의 남성들은 주로 노동자로 착취당했지만, 여성들은 노동자로, 성적 봉사의 제공자로, 재생산자로 언제나 착취당했다.

우리는 ‘계급’이나 ‘인종’ 따위의 분류를 역사에서 사람들을 구분하기 위해 수직으로 배열한 상자들로 생각했지만, 두 개념이 중첩되는 경계를 개념화하기는 어려웠다. 일부 중첩된 부분이 나타날 수 있는 두 개의 분리된 억압 체제를 비교하는 차원이 아니라, 서로 기대어 존재하는 완전히 통합된 몇몇의 측면들을 지난 하나의 체제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더 진실한 관계를 그릴 수 있다.

‘차이’에 근거한 타자화와 ‘타자’들 사이의 경쟁화 - 경쟁을 통한 지배계급의 정치

가부장제, 즉 남성들이 자원과 여성들을 지배하는 체제는 ‘일탈자’ 혹은 ‘타자’의 범주들을 창조하지 않는 한 존재할 수 없다. 계서제는 국가와 법률 속에서, 군사·경제·교육·종교제도 속에서, 이데올로기와 지배 엘리트가 창조한 문화적 산물 속에서 제도화된다.
다양한 모습을 띠는 억압체제들은 집단들을 서로 분리하는 기능을 한다. 억압받는 집단들에게 각기 차별화된 이점들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그들 간에 경쟁이 붙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억압체제들은 각기 분리된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이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체제가 내보이는 여러 측면들이다.

백인 여성들은 계급에 상관없이 배우자에게 성적·재생산적 봉사를 제공할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 흑인 여성들은 지독한 노동을 감수하는 것은 물론, 백인 주인과 그 주인이 선택해준 흑인 남성에게 성적·재생산적 봉사를 제공할 의무까지 있었다. 흑인 여성들의 백인 주인은 백인 여성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흑인 남녀를 사회구조에 편입시키고 그들의 삶을 통제한 결정적인 요인은 분명 인종차별주의였다. 그에 비해 백인 여성들은 성차별주의로 인해 입은 어떤 경제적·사회적 불이익도 흑인 남성과 여성 모두에 대해 갖는 인종차별주의적 이득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하층 계급의 백인들은 인종차별주의와 (남성의 경우에는) 성차별주의에서 충분한 이득을 확보했기 때문에, 명백한 경제적·정치적 불이익을 당했을 때조차 지배체제를 지지했다.
18세기 중반 이래, 백인 여성을 겨냥한 흑인 남성의 성범죄는 사형으로 처해진 반면, 흑인 여성을 겨냥한 백인 남성의 성범죄는 범죄로 간주되기는커녕 백인 남성의 권리라고 여겨진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들은 그들 인종의 여성에 대해 누리는 성적 특권뿐만 아니라 아내나 딸을 백인 남성의 공격에서 보호할 능력마저 부정당하고 말았다. 이는 그들을 비인간화하는 것이고, ‘차자’로 정의하는 것이며, 그들 스스로 내린 규정에 따라 낮은 신분임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고단수의 방식이었다.
미국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에는 고용주들이 노동조합화를 지연시키거나 저지하기 위해 노동자들 사이에 존재한 민족적 혹은 인종적 차이들을 확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몇 십 년에 걸쳐 쏟아져 나온다.

인종적·계급적·성적 억압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 그 억압체제들은 서로를 구성하고 강화하며 지원한다. 계급이 역사에서 처음 취했던 형태는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이었다. 인종차별주의가 최초로 취했던 형태는 성차별적이고 계급차별적이었다. 국가가 처음 취했던 형태는 가부장적이었다. 이런 것들이 재개념화를 위한 출발점이다.


- 남성의 지배와 특권은 직업의식으 남성적 묘형에 적합하도록 정의하고, 여성의 생애주기에 적합한 직업 경력의 유형들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 여성들이 한 세기 동안 투쟁해서 획득한 성과는 불공평하게도 상층계급 여성들에게 대부분 돌아갔다.(이하 본문 참조)
- 모든 재개념화는 새로운 개념 틀로 시작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