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숙소 문 부수고…표적단속에…토끼사냥 하듯
입력: 2008년 08월 13일 23:33:23

ㆍ이주노동자 추방 실태…3달동안 8000~9000명 마구잡이 구금
ㆍ단속법 강화 추진…“영장주의 위배”


정부의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인권단체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 3명이 13일 서울시내 모 쉼터에서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박재찬기자
23만여명의 국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 한때 논의됐던 불법체류자 양성화 방안은 쏙 들어갔다.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이 “불법체류자들이 활개치고 다니게 하지 말라”고 지시한 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내쫓는 단속만 있을 뿐 근본적인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확 바뀐 과잉단속=법무부는 5~7월 ‘불법체류자 집중단속’을 실시했다. 지난 6월 서울 안암동에서 단속된 베트남인 N씨는 “아내가 6월30일 출산예정이니 그때까지만 봐달라”고 호소했으나 결국 강제출국됐다.

경기 시흥에서는 필리핀 여성이 4개월된 젖먹이를 떼놓고 잡혀왔다. 임신 5개월된 베트남 여성도 단속됐다. 경기 마석에서는 방글라데시 출신 남성이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 3층에서 떨어져 다리와 허리 등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영 사무처장은 “출입국관리소를 찾아가 ‘임신부는 풀어달라’고 말했으나 관계 직원은 ‘출산 15일을 앞둔 사람도 내보낸 적이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석 달 동안 단속된 인원만 8000~9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역출입국관리소별로 ‘목표할당제’를 실시하면서 무리한 단속을 부추겼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의 이정원 교육선전차장은 “이전 같으면 인도적인 사유로 제외됐을 사람들도 무조건 잡아들였다”며 “몇몇 이주노조 조합원에 대해서는 표적단속도 의심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각국 대사관의 항의 등을 염려해 정확한 통계를 밝히지 않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임신 6개월까지는 겉으로 표가 잘 나지 않아 단속직원들이 알기 어렵다”며 “토끼사냥하듯이 마구잡이로 단속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중 삼중 단속법 강화=당국은 그동안 불법적으로 해왔던 마구잡이 단속 관행을 아예 법으로 명문화할 태세다. 법무부는 영장 없이 불심검문과 단속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 제46조 1·2항은 ‘출입국관리공무원은 영장 없이도 직원 판단에 따라 불심검문을 할 수 있고 사업장에 들어가 단속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주노조 측은 “경찰의 불심검문 때도 최소한 경찰관 신분증은 제시하고 소속과 성명, 동행장소 등을 알리는데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법도 인권도 없느냐”고 반발했다.

개정안 제63조 1항은 ‘강제구금된 외국인은 6개월까지 보호할 수 있고 6개월마다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는다’고 규정돼 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는 “영장이나 허가장 없이 단속하고 6개월 이상 구금하면서 법무부장관의 승인만 받도록 한 것은 사실상 법원의 지휘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헌법에 명시된 영장주의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에서는 지난 6월 지방노동사무소에 공문을 보내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도 체불임금 등의 문제를 겪고 있으면 선(先) 구제하고 후(後) 통보한다’는 지침을 삭제했다. 지방 노동사무소 관계자는 “구제부터 하는 종전의 방침은 현행 출입국관리법과 어긋나니 삭제하고 통보 의무를 강화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전했다.

통보의무가 강화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노동부에 민원을 진정하는 즉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돼 잡혀갈 수 있다. 자연히 체불임금 등 불합리한 문제들은 구제받을 길이 막히게 된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신성은 간사는 “지금도 출입국 직원들이 외국인 숙소의 문을 부수고 들어와 이주노동자들을 붙잡아 가는데 법이 개정되면 더 큰 인권침해와 사고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장은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