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재은씨가 읽었다는 글입니다.
저도 읽고 느낀 게 있어 같이 봤으면 좋겠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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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살 수 있는가?

어젯밤 잘 시간을 훌쩍 넘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본 것을 그에게 털어 놓았다 나는. 아침에는 지하철에서 만삭의 아랍 여인과 남자를 보았고, 집에 가는 버스에서는 젊은 동남아계 여인 두명을 보았고, 버스에서 내려서는 검은 피부에 흰 콧수염을 가진, 아프리카계 노인을 보았노라고. 다문화사회의 장면과 장면들이 부쩍부쩍 익숙한 것이 되어가는 이 풍경이 우리에겐 언제까지고 단지 남의 이야기일 수 있을까. 나의 사촌형은 동남아 여인을 만나 혼전 임신을 시켰고, 혼전 임신이야 고래로 드문 일이 아닐 터임에도 친가에서 의절이나 다름없는 처분을 받고 있다.

공장시대 안의 좁은 활동영역만을 지니고 있었던 우리 안의 타인들이 지금은 수도권의 어디에나 있다. 업주로부터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거나, 남편에게 흐드러지게 폭행을 당하곤 하는 그들이 끝끝내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는 이유는 저마다가 다르겠지만, 그렇게 이땅에 정주한 이주민들은 천천히 한국인으로서 자리를 만들어냈고 지금은 다문화사회라는 말이 우리에게 선명한 미래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 국제결혼 등의 경로로 이땅을 찾은 그들은 대개 저소득층을 벗어나지 못하며, 그로 인한 경제적 수탈, 편협한 순혈주의, 언어적 장벽 등에 가로막혀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얻어내는 데에는 명백히, 여러움을 겪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경기 부양"이라고 뒤범벅된 고소득층의 과소비를 가능케 하거나 합리화는 것은 임금노동자의 저임금과 정부의 복지지출 감소인데, 우리 사회에서 저임금 고강도 노동의 상당부분을 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해 온 것이 이미 십 수년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마치 우리의 어버이 세대가 선진국에 가서 이주노동을 했던 것과 같이 그들은, 경제의 하부구조를 떠받치며 휘황찬란한 도시의 야경을 밝히는, 어둠 속의 존재들이다. 3D라고 불리는 고강도 저임금의 기피직종에서 일하는 그들에게 또다시, 비인권적인 처우와 본국 송환의 위협이 닥쳐온다. 완전히, 그들은 어둠 속에서 일하며 어둠 속에서 죽고야 만다.



지난 해 잠시 다녔던 직장에서 겪었던 일인데, 50대의 동남아 남자가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Excuse me, sir?" sir라니. 아무리 좋게 불러줘도 officer 따위의 호칭이 가당할 것인데. 아들이 있다면 나보다 연장일 것이고 손자가 있다면 아장아장 걸을 나이의 그는 국가간 협약으로 초청된 국가 공무원이었고, 나는 그들의 한국 연수를 돕는 일개 직원에 불과하다. 귀빈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위를 내게 행사해도 무방한 그가 이 젊은 한국인에게 왜 그리 공손했던 것일까. 그는, 인간 보편의 권리라는 계단을 오르기도 전에 그와 나 사이 돈다발의 장벽을 보고 물러난 것은 아니었을까.

그 벽을, 지금 또 감내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이주민 여성들이다. 가난한 한국인의 처이거나 가난한 이주노동자의 처인 그들이 이주노동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하부구조를 떠받치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저소득층, 고령, 농촌 남성들의 다수가 이주민 여성과의 결혼으로 안정을 찾고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시선과 그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그네들의 처지는, 때때로 참담하기까지 하다. 비양심적인 중매업자들이 주선하는 국제결혼은 여성을 배우자가 아닌 노예로 간주하고 '후불, 숫처녀 보장, 절대 도망가지 않음' 따위의 문구를 적어 광고를 내보낸다. 그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야만성의 증명일 뿐이다. 결혼 후에도 대부분의 경우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데 극도의 어려움을 겪으며, 일부의 경우는 남편의 폭력과 가난에 시달린다.

이주민의 불안한 현재는 불안한 미래를 예고한다. 최소한 우리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의 진입을 피할 수 없는 일이며, 사실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행되고 있는 과정을 보면 그 미래는 다분히 부정적이다. 원주민들의 출산율은 감소일로, 그에 비해 저임금 노동자의 수효는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되고, 이주민 유입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저임금을 피할 길이 없으므로 서민계층을 형성할 것인데, 이전까지 농촌지역과 도시 지역 저소득층 원주민과의 혼인을 통해 형성된 가정들도 대개는 저소득계층으로 계속 남을 것이다. 언어적 인종적 이질감이 우리 사회에 형성될 것이고 그것은 고착된다.



이제까지 사회 통합을 저해해 왔던 각종 악재들, 지역차별이나 소득격차 따위는 차라리 인종적 이질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이주민은 부자 혹은 미인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설령 그런 사람이 늘어난다 해도 미주 지역의 흑인처럼 상부구조에 동화된 삶을 살 뿐 본연의 정체성을 확립하지는 못할 터이다(오바마 역시 백인사회에 아주 잘 동화된 한 사람의 흑인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이주민계통의 저소득층 사회 - 원주민계통의 중산층 이상 사회로 양분되는, 그 미래는 생각보다 잔혹하다. 지금과 같이 상부구조의 전횡과 수탈은 계속되고 그것을 인종적 이질감을 지닌 하부구조가 떠받든다. 민주주의적 원리나 인권 보편의 원리는 경제논리에 치장되어 오로지 선거에서의 한 표로만 가치를 지닌다. 그런 미래를, 대다수의 원주민들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게 될 것이지만.

그것은 이미 완벽한- 제국이다. 외부로의 확장이 불가능한 우리사회의 경제구조가 성장률을 유지하는 방편은 지금 이명박 정부가 보여주듯, 상부구조를 축소함으로써 하부구조를 부풀리고, 그로부터 경제수탈을 자행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비정규직을 늘려 그들의 경제적 권리를 사업주들이 빼어먹는 것. 지난 200년간 반복되어 온 자본주의의 가장 천박한 얼굴이다. 저임금 고강도의 노동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지금껏 아주 당연한 것인 양 자행되어 왔는데 문제는, 이들을 경제적 수탈로부터 보호할 방편이 실제로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은 이주노동자의 제도화에만 골몰할 뿐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비인간적인 처우를 당하는지에는 무관심하다. 사업주가 불법노동활동을 자행해도 막지 않는다. 그 사이에 의료보험의 우산 바깥으로 내몰린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은 의료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하위계층에게 강요된 희생으로 상위계층이 배를 불리는 세계. 예견된 미래이고 잔혹한 현재이다. 그런 세상에서 양심적인 인간으로 당신은, 살 수 있는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활동 보장과 노동 3원칙 준수, 다문화가정에 대한 복지 및 동화대책, 그들과 우리의 자녀들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평준화 유지, 사회적 안전망의 정비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