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치마에서 지난 번에 사랑방에서 상영했던 영화 <3×FTM : 세 명의 성전환 남성 이야기> 후기를 써달라고 해서 쓰게 됐어요.
그냥 한번 읽어보세요.

<3×FTM : 세 명의 성전환 남성 이야기> 공식 블로그가 있더군요. http://blog.naver.com/3f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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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들의 ‘꿈틀’에 나는 ‘휘청’
내가 이렇게 젠더적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다니!


영화 <3×FTM : 세 명의 성전환 남성 이야기> 이전에 트랜스젠더 이슈를 접한 건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를 통해서였다. 처음 만나 지렁이가 ‘꿈틀’했을 때 난 ‘휘청’거렸다. 그때, 지렁이를 만난 건 나에게 ‘사건’이었다.

2006년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발족식에 가게 되었다.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주간인권소식지 <인권오름>의 당시 편집인이었던 나는 <인권오름> 필진이었던 한무지 씨를 만날 일이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트랜스젠더인권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마음으로 지렁이 발족식에 가게 되었다. 또한 트랜스젠더인권운동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는 약간의 ‘호기심’이 있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혼자 가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래서 친구 녀석을 꼬드겨 함께 갔다. 트랜스젠더인권운동을 만나는데 용기가 필요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낯섦과 혼자 있게 될 것에 대한 뻘쭘함 때문에 좀 부담스러웠다.

당시 지렁이 발족식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에겐 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어느 순간 난 누가 트랜스젠더일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트랜스젠더를 구분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웃긴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내가 혹시 FTM을 여성으로, MTF를 남성으로 대하는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를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던 난 결국, 누가 말이라도 시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긴장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말없이 앉아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한무지 씨를 만나고 나서 나의 혼란은 거의 확신에 가깝게 되었다. 한무지 씨를 만나기 전에 전화 통화로 짐작했던 그는 분명 ‘남성’이었는데 당시 그는 여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난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그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어 황망히 그와의 접촉을 끝내고 다시 구석 자리로 돌아와 말문을 닫아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난 한무지 씨의 기획된 드렉의 의도에 완벽히 넘어갔던 것이었다.

이날 지렁이를 만나면서 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젠더적으로 사람들을 상대해왔는지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 되돌아보니,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 사용하는 단어나 어투, 제스처를 취하는 방식, 인사하면서 가볍게 어깨를 친다든가 하는 행동 등 심지어 상대방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 상대방과의 물리적인 거리까지 사소한 모든 것이 젠더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트랜스젠더를 처음 대하게 되었을 때, 내가 그/녀와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 어투, 스킨쉽 등 모든 것을 성별 경계 위에서 혼란스러워 하며 긴장하고 있었음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서였다. 그동안 난 누군가를 대할 때 상대의 성별, 나이, 나와의 친밀도 등과 같은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종합·분석한 후 수많은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마다 다르게 대해왔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성별에 따른 나의 태도에는 남/녀 이분법적으로 범주화된 일련의 패턴이 있었다. 남성에겐 남성화된 방식의 친밀함을 드러내는 과정으로서 좀더 과격하고 거칠게 대하기, 여성에겐 좀더 ‘조심스럽게’ 대하기가 대강의 성별화된 패턴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인권운동을 해오면서 느꼈던 것들 중 새로운 무언가가 내 머리를 때리는 느낌에 난 기분 좋게 휘청거렸다.

이후 여러 활동을 통해 지렁이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트렌스젠더 활동가들을 대하는 나의 긴장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연대활동을 통해 그/녀들을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그/녀들의 삶을 좀더 깊이 이해하기란 역시나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3×FTM>을 보게 되면서 트렌스젠더들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연대 활동을 통해 만나게 되는 지렁이 활동가들의 운동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영화를 통해 트랜스젠더들이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 그들의 일상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등 많은 사람들이 겪는 삶의 경험들을 조금은 다른 결로 고민하고 있는 그들의 삶의 모습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 역시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한 동시에 트랜스젠더들이 성별이분화된 사회에서 겪는 구체적인 고민들에 대해서도 좀더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영화를 통해, 추상화된 ‘트랜스젠더’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으로서 그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영화에 나오는 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특히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였고, 남자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는 FTM과 “남자로 사는 것이 좀더 편할 것 같아서(…)”라고 하는 FTM의 말은 모순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동성애인권운동의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트랜스젠더인권운동의 과정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나는 이러이러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강조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논리는 사실이기도 하다, 고 알고 있다. 그런데 트랜스젠더가 마치 선택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트랜스젠더인 것은 필연적인 것인지 선택적일 수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공격받을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져 좀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본 후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기존의 사회 관념에 맞춰진 주류화된 언어이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써 비주류인 트랜스젠더의 삶과 고민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성별이분화가 일반화된 사회에서는 언어조차 그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까. 우리는 쉽게 세상에 존재하는 성별을 가리키며 ‘남녀’라는 말을 쓰지만, 이 말에는 남/녀 이분법에 포함되지 않는 성별에 대한 고민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고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 목욕탕, 심지어 미용실과 옷가게 등의 문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경험을 표현할 때 느끼게 되는 언어의 한계를 우리는 어떻게 풀어내고 설명할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인권운동과 영화 <3×FTM>은 때론 날카롭게 때론 조곤조곤하게 나의 사고방식과 인권운동에 끊임없는 물음과 도전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