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 평가:
‘남북대화-6자회담 연계전략’의 한계와 향후 과제



2006년 7월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그에 대한 항의로 남한이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며, 북한이 다시 이산가족상봉행사를 거부함으로써 남북 당국간 대화가 단절 된지 7개월 만에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3박 4일간 평양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제20차 장관급회담에서 남과 북은 당국간 대화의 복원,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2.13 합의’의 이행 노력, 6.15와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양 당국의 참가, 개성공단 활성화 조치 실시,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에서 제21차 장관급회담 개최 등에 합의하였다. 그 밖의 합의 사항을 이행 시기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3월 9일 이산가족면회소 건설 조기 추진을 위한 쌍방 적십자 단체 간 실무접촉 → 3월 14~15일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위원접촉에서 올해 상반기 내 열차시험운행 실시 방안 논의 → 3월 27~29일 이산가족 화상상봉 → 4월 10~12일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등 협의 → 4월 18~21일 경협위 회의 평양 개최 → 5월 초순 이산가족 대면상봉 행사

대북 비료 지원은 공동보도문에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비료에 대해 (북측이) 얼마만큼 필요한지 전통문을 보내기로 했고 그에 따라 우리가 보내게 돼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산가족면회소 건설 및 화상상봉이 비료지원과 맞물리고, ‘2.13 합의’에 따른 북한의 핵 폐기 ‘초기조치’(4월 14일까지 이행)가 남측의 쌀 차관 제공 재개(4월 18~21일 남북경협위에서 결정) 및 이산가족 대면상봉 행사(5월 초순)와 연결되는 ‘행동 대 행동’의 고리가 형성되는 셈이다.

이 같은 합의 결과에 대해, 이번 회담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제13차 경협위 개최시기를 우리 측 안인 4월 18~21일로 관철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짜놓은 판 위에서 거의 모든 사안들이 타결”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북측은 회담과정에서 쌀 차관을 논의할 경협위가 3월 중에 열려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우리 측은 북핵 상황을 감안, `2.13 합의'의 초기 조치 이행 시한인 4월 15일 이후에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쌀 차관을 ‘지렛대’로 북측의 ‘2.13 합의’ 이행을 강제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쌀 차관을 ‘지렛대’로 해서 핵문제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이 같은 전략이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에 대해 냉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06년 7월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후 한국정부가 쌀 및 비료 지원을 중단하였지만, 북한은 작년 10월 핵실험까지 강행하였다. 쌀 및 비료 지원 중단이 북핵 위기의 악화를 방지하는데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세계최대의 군사대국인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은 북한에게 최대의 안보위협 요인으로 작용해왔고, 중국은 원유라는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 한국으로부터 쌀과 비료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북한 주민은 보다 고달픈 생활을 영위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북한체제가 무너지거나 안보가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북핵 문제라는 국제문제를 해결하는데 쌀 차관을 ‘지렛대’로 사용하기보다 ‘지렛대’의 크기를 더욱 키우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현실적인 대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핵 문제는 현재 우리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유일한 과제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산가족 상봉과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해결 그리고 남북한 경제통합을 위한 경협사업 등 다른 과제들도 있다. 이 과제들은 국제공조가 아니라 남북대화를 통해 풀어야 할 것들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의 해결과정에 남북대화를 종속시키게 되면 남북한 간에 풀어야 할 문제들의 희생이 불가피해진다. ‘국제문제’인 북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외교와 국제협력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고, 북한이 극단적 위기를 조성하지 않는 한 남북대화는 고유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비료와 쌀 제공의 로드맵을 ‘2.13 합의’의 이행시간표에 연계시키면서 남북한 관계의 복원 속도는 늦추어지고, 정작 중요하게 다루어졌어야 할 장성급회담 개최 문제는 언급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북측은 3월 중에 경협위를 개최하고, 조속히 적십자회담을 개최하며, 3월 또는 4월 중에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실시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쌀 차관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경협위 개최를 남측이 4월 18~21일로 고집함으로써 북측은 적십자회담을 4월, 이산가족 대면상봉을 5월초로 연기시켰다. 그리고 우리 측은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면회소 건설을 즉각 재개하자는 입장을 보였으나, 이산가족 화상상봉을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실시하고, 면회소 건설을 ‘빠른 시일 안에’ 추진하기로 합의하는 선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남측의 철도 ‘연내’ 개통 주장은 공동보도문에 반영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 장관급회담은 7개월간의 당국간 대화 중단 이후 개최된 회담인 만큼, 작년 5월 25일 실시하기로 합의하고도 북한 군부의 반대로 무산된 열차시험운행과 6월말 실시하기로 했다가 북한의 무성의로 좌절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을 올해 실천에 옮기는 문제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남북대화와 6자회담을 연계시키면서 열차시험운행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조치를 마련하기 위한 장성급회담 개최 문제와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 문제는 ‘관대하게’ 논의에서 실종되었다. 결국 장관급회담의 개최에도 불구하고 남북 당국간 관계의 복원이 불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2월 14일 신언상 통일부 차관이 장관급회담 실무대표접촉 개최 합의를 발표하면서 밝힌 것처럼 올해 남북한 관계를 ‘불가역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한다면, 한국정부는 향후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첫째, 3월 14~15일 개성에서 진행될 경협위 위원접촉을 통해 열차시험운행이 막연히 ‘상반기 내에’가 아니라 지난 해 합의한 날짜인 5월 25일, 늦어도 ‘6.15민족통일대축전’ 이전에 실시될 수 있도록 일정을 잡고, 군사적 보장조치 마련을 위해 남북장성급회담이 조속히 개최될 수 있도록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둘째, 남북한 철도 개통도 막연하게 ‘연내에’ 성사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8.15민족통일대축전’ 이전에 개통될 수 있도록 협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있을 연말에 철도 개통이 이루어지면 한국정부는 남북한관계를 선거에 이용한다는 ‘의혹’과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한국정부는 특히 제21차 장관급회담에서 철도 개통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해 타결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작년에 북한이 초청하고도 무산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올해 6월 이전에 성사될 수 있도록 향후 회담을 통해 북한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쌀 차관의 제공을 북핵 문제라는 남북한 관계 수준을 넘어서는 국제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용할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 합의 사항을 북한이 성실히 이행하게 하는데 ‘지렛대’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넷째, 북핵 폐기를 위한 ‘초기조치’ 단계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성화될 것에 대비해 향후 한국정부는 경협 사업에 대한 북한 군부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장관급회담 대표단 내에 장성급 대표를 포함시키는 방안에 대해 북측과 논의하고, 장성급회담 개최의 정례화 등을 통해 남북군사대화를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 조치 이후에는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방안에 대해 남북간에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정성장(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sccheong@sej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