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재단 논평] 북·미관계 정상화, 개방, 그리고 북한인권

제22호 / 2007-09-27 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9·19공동성명과 2·13합의 이행 일환으로 북·미관계 개선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주목할 만한 두 가지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첫째, 북한은 관영매체 등을 통하여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북한인권 문제제기에 대해 비난과 역공하는 등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둘째,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 관리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탈북자와 관련단체들과의 면담을 통하여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흐름을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와 연결 지어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대비의 일환으로 미 행정부 차원에서 북한인권 실태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관련하여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북한인권법에서 제시되고 있듯이 일부에서 헬싱키 프로세스를 원용하여 북한인권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하고 있다. 헬싱키 프로세스에서는 체제보장, 경제지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서방에서 제기한 인권 및 인도주의 사안을 수용하였다. 반면 9·19공동성명 및 2·13합의에서는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헬싱키 프로세스와 유사하지만 그와 달리 체제보장, 경제지원 제공 대가로 북한은 인권의제 대신 핵을 포기하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체제보장, 경제협력, 인권협력의 세 개의 바스켓으로 구성되어 있는 헬싱키 프로세스를 북한인권 개선방식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다만, 미국은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북한의 인권개선을 제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헬싱키 프로세스를 원용하려 할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으로서는 불능화의 대가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되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면 미국을 상대로 한 정치·외교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선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 과정에서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사상전’이 전개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또한 북한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의 체제 안전보장을 넘어 국제사회와의 경제협력을 통해 정권안보의 자생력을 강화하기 위해 점진적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개방과정에서 외부로부터 정보가 유입되는 등 체제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인권문제가 개방과정에 서 체제불안을 야기할 핵심 소프트파워가 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 북한이 인권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북·미관계 개선 과정에서 인권문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통제된 형태로 개방하면서 인권이 체제불안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체제불안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북한이 지속적으로 개방의 길로 나가도록 촉진하는 동시에, 북한주민의 인권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일부 NGO의 주장처럼 북한인권 문제의 안보리 회부,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등 북한체제와 최고지도자를 직접 겨냥하는 것은 적절한 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북한당국이 개방으로 나오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북한주민의 인권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의 폐쇄적 성격과 시민사회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외부의 문제 제기 없이 북한당국과 주민 스스로 인권을 개선해나가는 것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외부로부터의 인권 개선 요구가 불가피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이 유엔회원국이고 4대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유엔인권레짐의 틀 속에서 북한인권 문제는 적극적으로 개진될 필요가 있다. 다만, 북한이 체제불안에 대한 우려 없이 지속적으로 개방을 추진하도록 촉진하고 인권개선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협력과 대화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유럽연합과의 인권대화가 재개되도록 하고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북·미간 인권대화가 성사되도록 함으로써 개별국가 차원에서도 다양한 양자 인권대화의 틀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가입한 국제인권규약과 북한국내법을 기준으로 인권문제에 접근함으로써 북한의 반발을 최소화해야 한다. 형법 등 북한 국내법률에 위반되는 인권유린의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시정을 촉구할 경우 북한도 체제위협이라고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법률과 실천 사이의 괴리를 줄여나가기 위해 법률종사자 등에 대한 교육을 촉구하고 프로그램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이 가입한 국제인권규약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정비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끝으로 북한이 가입하지 않은 인종차별철폐협약과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대 북지원을 통하여 경제적 인권을 신장하고 개혁·개방을 유도하여 스스로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간다는 정부의 인권정책은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남북관계 개선과정에서 인권적 관점을 보다 강력하게 투영하여 북한 내 여건이 실질적으로 조성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개발협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주민의 참여 등을 통해 북한주민의 권리를 제고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시행해나가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