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원
동시통역사

2006년 5월 아름다운 도시 베르겐에서 제7회 북한인권 회의가 열렸다. 1회 때 맺은 인연이 계기가 되어 7회 중 5차례 통역을 맡게 된 본인은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베르겐에서 지난 7년을 되돌아보며 그 동안의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도 함께 가질 수 있었다.
제1회 국제회의는 이화여대에서 열렸다. 처음으로 북한인권에 대해 하게 되었고 당시에 기억에 남는 것은 탈북자들의 증언들, 꽃제비들의 참혹한 삶을 담은 영상물, 그리고 러시아, 중국, 그리고 북한의 수용소에 관한 얘기들. 통역대학원 시절 타임지에서 읽었던 Harry Wu가 직접 와서 발표도 했고 많은 외국인들이 북한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통역사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발언은 아마도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온 한 참석자가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지적이었다. ‘탈북자’ 문제를 토의하는 과정에서 난민의 지위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인정해 주지 못함을 호소하면서 왜 우리부터 ‘탈북자’들을 영어로 ‘refugee’라고 하지 않고 ‘defector’라 부르고 있냐는 지적이었다. 당시 본인은 ‘탈북자’라는 단어가 나오면 ‘defector’ 혹은 ‘escapee’라고 통역을 하고 있어서 매우 뜨끔했다.
제2회 회의는 연세대에서 열렸으나 일정이 짧아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 1회 때 본 참석자들이 다시 한국에 찾아왔구나 정도로 기억이 된다. 그 후 일본에서 열렸던 3회와 프라하에서 열린 4회는 개인사정으로 통역하지 못했다.
바르샤바에서 열린 5회 회의부터 다시 투입되어서 시민연합과의 관계가 재개되었다. 바르샤바 회의는 본인에게 많은 충격을 준 회의였다. 폴란드인의 인권에 대한 높은 시민의식 앞에 겸허해 질 수 밖에 없었고 특히 유엔인권위원회 투표에 대한민국이 기권을 한 상황이어서 수치감마저 느꼈다. 폴란드의 젊은 청년들이 갖는 관심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폴란드에 있었던 이유로 유태인 대학살을 막지 못했던 아픔을 직접적으로 느낀 폴란드인들은 탈북자의 증언을 듣고 진심으로 눈물 흘렸다.
제6회 회의는 서강대에서 열렸다. 회의장 앞에서 대학생들은 반대시위를 했고 본인은 우리나라에서의 ‘보수’와 ‘진보’에 대해 생각했고 그 아이러니에 혼자 웃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 얘기가 나오면 어떻게 통역하지…”하고 걱정했다. 단순히 일대일 대응으로 의미가 전달될 수 없는 상황은 동시통역을 하는 입장에서 제일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부연설명을 하게 되면 후속내용을 제대로 다 통역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7회 얘기를 해보겠다. 많은 성과가 지난 7년간 있었기 때문에 이번 회의에는 유엔특별보고관, 정부대표, 국회의원까지 참석하게 되었고 미국에서는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었으며 유엔에서도 본격적으로 북한인권문제를 공론화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탈북자들의 증언이 회의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과거에 이들의 증언은 ‘설마’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면 그 동안의 많은 노력으로 북한의 실상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찾아야 한다는데 모였다.
회의는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진행으로 이어졌다. 일반적인 개회식, 발표 및 토론, 폐회식, 그리고 휴식시간을 이용한 영상물 상영과는 달리 피아노 연주, 희곡 낭독, 시각디자인 등 예술을 통해 인권문제를 접근해 보자는 매우 훌륭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래서 여기가 선진국이구나”라는 탄식말고 할 말이 없었다. 창의성도 여유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금번회의를 통해 이제는 우리가 북한인권 문제의 소위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각적은 접근을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탈북의 이유는 더 이상 식량난, 수용소의 비인도적인 상황 등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김철웅 씨는 북한에서 엘리트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버리고 탈북을 두 차례 감행했다. 자유로운 음악세계를 펼치고 싶어서. 그는 ‘refugee’ 보다는 내가 만난 첫 북한 ‘defector’ 였다.
또 강제송환이 가져 다 주는 새로운 인권유린에 또 한번 가슴 아팠다. 중국으로 넘어가 아이를 낳고 사는 북한여성이 강제송환 되면 제2의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이미 50년 이상의 분단의 아픔을 겪은 우리가 또 다른 이산가족이 나오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본인은 인권전문가가 아니기에 구체적인 생각이나 대안은 없다. 그러나 사학을 전공한 한 사람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분단 50여년은 한반도의 4000년 이상의 역사에 비춰볼 때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다. 50여년동안 분단되어 독립된 삶을 살았더라도 한민족은 결국 통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이젠 관망만 해서는 안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세월이 흘러 통일이 되고 진정한 민족화합이 이루어져 분단 자체가 역사의 한 장으로 기록될 때 “아~우리가 그렇게 남과 북으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지” 하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 후세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행동해야 한다. 무지에서 비롯된 무행동은 안타깝지만 알고도 행동하지 않음은 비겁한 것이다. 나중에 탈북자들의 삶이 영화로 만들어져 극장에서 눈물 흘리지 말고 지금부터 우리 마음속의 편견을 버리고 북한인권개선을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일은 실천하면 좋을 것 같다.(2006.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