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인도적 지원의 방향과 조건



2005년 9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4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방향이 결정됨으로써 남북한관계 발전의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 제거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곧 이어 시작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와 대북 인권 압력 강화 및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6자회담의 재개가 계속 연기되고, 특히 올해 들어서는 온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남북열차시험운행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까지 무산되었다. 그 결과 한국국민의 대북 감정이 크게 악화된 상태에서 북한이 지난 7월 5일 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함으로써 남북한관계는 극도로 경색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7월의 집중호우는 다락밭 건설로 나무가 드물고, 복구장비도 태부족한 북한에 매우 심각한 피해를 가져왔다. 집중호우로 북한에서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인명피해가 도합 5만 4천 7백여 명에 이르고, 이재민은 250여만 명, 유실 및 침수된 농경지가 수십만 정보, 철교를 포함하여 끊어진 다리가 230여개(사단법인 ‘좋은벗들’의 추정치)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상 최악의 수해로 인해 평안남도 양덕군에서는 집을 잃은 수재민들은 9천여 명이며, 죽은 자가 산 자보다 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함경남도 요덕군에서는 수재민이 약 5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자강도의 한 군수공장에서는 폭우로 공장 입구가 메워지는 바람에 그 안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집중호우는 북한 군대에도 큰 인명 피해를 가져와 양덕군 봉계리에 있는 한 개 중대 120명이 잠을 자다가 산사태로 전체가 묻히는 등(‘좋은벗들’ 소식지 34호) 수해로 인한 참상은 이루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만약 남북한관계가 좋은 상태였다면 한국정부가 북한의 심각한 수해에 직면하여 신속하고도 적극적으로 긴급구호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한국정부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대북 긴급구호에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되기를 기다리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가 시민단체와 대북지원 단체를 중심으로 대북 지원 여론이 형성되고 정치권에서도 식량 지원을 촉구하면서 한국정부는 지난 8월 11일 대북민간단체를 통해 쌀, 밀가루, 기초의약품 등 100억원 가량의 생활필수품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지난 19일 금강산에서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을 가진 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쌀 10만t과 260억원 상당의 복구용 자재장비(시멘트 10만t, 철근 5천t, 덤프트럭 8t짜리 100대, 굴삭기 50대, 페이로더 60대) 및 구호품(모포 8만장, 의약품 등)을 지원키로 결정하였다.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결정을 환영하면서 향후 우리 정부 및 대북지원단체가 지원 과정에서 고려하였으면 하는 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정부와 대북지원단체는 지원물자에 대한 모니터링(분배현장 방문) 문제에 특별히 중요한 관심을 가지고 북측의 적극적 협조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정부는 7월 19일의 금강산 실무접촉에서 북측과 논의하여 이번 지원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 피해지역을 중심으로 몇 군데’를 대상으로 점검을 실시하기로 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북한 수해 긴급구호를 위해 민간단체 모금액에 비례해 지원하는 ‘매칭펀드’ 지원금 100억원을 받게 될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의 신명철 운영위원장도 “(북측과의) 실무 접촉시 북측에 지원 이후 분배 확인 등도 요청해 꼭 필요한 수재민이 혜택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자금을 바탕으로 북한 지원에 나서는 만큼 물품 구매, 전달, 사후 모니터링 등 전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정부와 대북지원단체 모두 지원물품에 대해 ‘사후’ 모니터링을 실시하기로 하였으므로 지원물품의 일부가 군대로 흘러들어간다고 해도 그것을 사전에 막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물론 북한 군인들은 민간인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낫지만 상당수가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고, 집중호우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군인들도 이번 구호지원의 혜택을 입으려 할 수 있지만, 이는 한국 국민의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 정부나 대북지원단체는 향후 대북 실무 접촉시 인도적 지원물품이 만에 하나라도 군대에 들어가면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북측에 명확히 밝히고, 분배 시점에 모니터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북측의 적극적 협조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둘째, 지원물품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북한의 현실을 정확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정부는 이번에 복구용 자재장비로 덤프트럭 8t짜리 100대와 굴삭기 50대 등을 제공하기로 하였는데, 북한에서는 재해가 발생하면 현대적인 장비 대신 주로 ‘인해전술’에 의존해 복구 작업이 이루어진다. 복구 현장에서 트럭이나 굴삭기 등의 장비는 찾아보기 힘들고 삽이나 밧줄, 가마니 등이 주로 이용된다. 현대적인 장비도 부족하지만 석유 부족 때문에도 인력(군중동원)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따라서 삽과 곡괭이, 리어카처럼 석유를 소모하지 않는 단순한 장비가 북한의 복구 현장에서는 더욱 유용할 수도 있다.

셋째, 인도적 대북 지원의 조건 및 규모와 관련하여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번 쌀 지원 규모가 다소 크다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한국정부가 이번에 지원할 쌀 10만t은 최근 수해로 인해 발생한 식량 추가 부족분을 메워주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정부가 이번에 10만t을 지원한다고 해도 여전히 156만t 정도의 부족분이 발생하여 올해 북한의 식량사정은 근래 들어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지원도 거의 끊긴 상태이기 때문에 남한으로부터 50만t의 추가 식량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한 1990년대 중반의 비극적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

따라서 북한이 더 이상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않고, 지원물자에 대한 모니터링에 적극 협조한다면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중단된 50만t의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북한으로서도 이것이 가능하도록, 이산가족상봉 재개 → 남북열차시험운행에 대한 군사보장조치 마련 → 열차시험운행의 실시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재추진 및 당국간 대화의 복원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sccheong@sejong.org